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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원규와 김병욱의 입문
  • 전주 사람 서원규(徐元奎)가 나이 사십 줄에 이르러, 일생에 크게 죄지은 바가 있어 천지에 사죄할 길을 찾다가
  • 그 부모가 다니던 대원사가 퇴락(頹落)한 것을 보고 박금곡 주지와 상의하여 쌀 백 석 거리로 대원사를 개수하고 꾸준히 왕래하며 죄업을 속죄하던 중에
  • 금곡으로부터 증산 상제님께서 신축년에 대원사에서 대도통을 하시고 장차 새 세상을 여시리라는 소식을 들으니라.
  • 이에 원규가 상제님 모시기를 소원하여 계묘(癸卯 : 道紀 33, 1903)년 정월에 서천교(西川橋) 사거리에 있는 자신의 약방에 상제님을 모시니
  • 전주에 사는 김병욱(金秉旭)과 김윤찬(金允贊), 그 밖에 여러 사람이 따르니라.
  • 상제님께서 이 해에 전주와 하운동을 왕래하시며 여러 사람의 병을 고쳐 주시는데
  • 약재를 쓰지 않고도 곧 쾌차케 하시니 모든 사람이 그 신묘하심에 감복하니라.
  • 하루는 김병욱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남은 어떻게 생각하든지 너는 전명숙(全明淑)의 이름을 해하지 말라.
  • 너의 영귀(榮貴)에는 전명숙의 힘이 크니라.” 하시니라.

  • (증산도 道典 3:31)




  • 1절 31:1 서원규(徐元奎, 1855∼1935). 본관은 이천(利川). 본명은 상의(相儀), 자(字)는 자준(子俊). 김병욱 성도와 친했으며 백남신 성도와 인척간이다. 전주부에서 가장 큰 한약건재상을 운영한 부호였다. 키가 150cm 정도였다.
  • 4절 31:4 서천교. 전주시 전동3가에서 동완산동으로 넘어가는 다리. 서천교 사거리는 본래 약령시장이 섰던 곳으로 번화가였다.
  • 5절 31:5 김병욱(金秉旭, 1874∼1938). 본관 김해. 족보명 희근(熙根). 부 연수와 모 남평 문씨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나 백부 학수의 양자가 되었다. 집안에 손이 귀해 혼인한 후로 관운장을 모시고 철마다 치성을 드렸다. 집안 대대로 무관을 지냈으며, 입문 당시에 전주 육군 진위대 참위(지금의 소위)였고 정미(道紀 37, 1907)년 군대 해산시 부위(중위)로 전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