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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듣기
  • 최 풍헌의 큰 지혜 : 변국을 꿰뚫어 본다
  • 상제님께서 하루는 성도들에게 최 풍헌(崔風憲)의 옛일을 말씀해 주시니 이러하니라.
  • 최 풍헌은 지난 임진란(壬辰亂) 때 전라도 고흥(高興) 사람이라.
  • 풍헌이 밤낮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며 동리 사람들에게 욕설을 하고 툭하면 지나가는 행인에게 시비를 거니 모두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니라.
  • 그러나 류 훈장(柳訓長)은 그런 풍헌을 그 때마다 타이를 뿐이니, 이는 풍헌이 일에 임하면 명민하고 지혜가 뛰어나므로 일찍부터 범상치 않게 보아 온 까닭이라.
  • 한번은 고을 현령이 풍헌을 못마땅히 여겨 파면할 구실을 찾으려고 고을 호구대장과 토지대장을 주며 몇 달이 걸릴 일을 “보름 안에 조사해 오라.” 하고 명하니
  • 풍헌이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술에 취해 돌아다니다가 기한이 차매 뜻밖에 한 사람도 빠트리지 않고 정확히 조사하여 올리거늘
  • 조사한 날이 모두 한날한시인데다 수결(手決)까지 쓰여 있어 현령이 크게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니라.
  • 몇 달 후에 ‘왜병이 침입하리라.’는 풍설이 널리 퍼져 민심이 크게 소동하거늘 류 훈장이 풍헌에게 피난할 일을 부탁하되 풍헌은 ‘알지 못한다.’며 수차 사양할 뿐이더니
  • 하루는 술에 취하여 말하기를 “그대의 가산과 전답을 다 팔아서 나에게 맡기라.” 하매 훈장이 풍헌을 믿고 그대로 따르거늘
  • 10 풍헌이 그 돈으로 날마다 술을 마시며 방탕히 지내다가 갑자기 한 달 동안 사라져 보이지 않으니라.
  • 11 훈장은 믿는 바가 있어 모르는 체하며 지내는데 하루는 ‘풍헌이 사망하였다.’는 부고가 이르거늘
  • 12 훈장이 크게 놀라 풍헌의 집에 찾아간즉 풍헌의 막내아들이 건을 쓰고 곡하며 훈장을 맞으매
  • 13 “어떻게 돌아가셨냐?” 하고 물으니 “술에 취해 넘어지면서 구정물통에 머리가 박혀서 돌아가셨다.” 하므로 시신을 살펴보니 과연 최 풍헌이라.
  • 14 훈장이 상제(喪制)를 위로하고 나서 “유언이 있느냐?” 하고 물으니
  • 15 대답하기를 “류 훈장에게 통지하여 그 가솔과 더불어 상복을 입고 상여 뒤를 따르게 하여 지래산(智萊山) 아무 골짜기에 장사지내라 하였습니다.” 하는지라
  • 16 훈장이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 의논하니 모두 곧이듣지 않고 막내아들 하나만 뜻을 따르거늘
  • 17 사흘 후에 굴건제복(屈巾祭服)하고 운상하여 지래산 속으로 들어가니 골짜기 위에서 ‘상여를 버리고 이곳으로 오라.’는 소리가 들리므로 바라보니 곧 풍헌이라.
  • 18 이에 상여를 버리고 올라가니 그곳에 가옥을 지어 놓고 양식을 풍부히 마련해 두었더라.
  • 19 얼마 후 밤이 되어 살던 마을 쪽을 바라보니 불빛이 환하거늘 풍헌이 말하기를 ‘이는 왜병이 침입하여 온 마을에 불을 지른 것이라.’ 하매 훈장이 더욱 탄복하니라.
  • 20 그런데 그 골짜기 위에서 본 최 풍헌의 얼굴이 본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하니라.

  • (증산도 道典 7:85)




  • 1절 85:1 최 풍헌. 자세한 신상은 알 수 없다. 평양으로 피난 간 선조 앞에 나아가 ‘병권을 3일만 허락하면 왜병을 3일 내에 전멸하겠다.’고 하였으나 왕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다시 ‘그러면 최 풍헌 네가 병권없이 왜병들을 없애라.’고, 한 말씀만 내려 달라고 청하였으나 이 역시 허락되지 않아서 조화권을 쓰지 못하고 통탄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풍헌(風憲)은 조선시대 대민 행정 실무를 담당하던 향임(鄕任)의 하나로서 오늘날 면이나 동의 직원에 해당한다.
  • 15절 85:15 지래산. 전남 고흥군 동강면 매곡리(梅谷里) 당곡(棠谷: 땅골) 마을뒤에 있는 병풍산(461m). 비조암(飛鳥岩, 장군바위)이 있으며 지리산이라고도 한다.
  • 17절 85:17 굴건제복. 굴건(屈巾)과 제복(祭服)을 아우르는 말로, 상복 차림에 두건을 쓰고 그 위에 건을 덧쓴 차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