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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문의 식주인 태운 김형렬
  • 김형렬(金亨烈)의 호(號)는 태운(太雲)이라.
  • 동곡(銅谷)에서 생장(生長)한 후 환평(環坪)에 옮겨 살다가 금구 내주평(金溝 內注坪)으로 이사할 때는 부자였으나
  • 갑오년 동학혁명에 참가하여 청주 전투에서 죽을 목숨을 상제님의 은혜로 구원 받아 귀향한 뒤로 동학과 연줄을 끊고 가업에만 종사하다가
  • 가운이 기울어 가난하게 되매 잠시 용화동(龍華洞)으로 이사하여 사니라.
  • 형렬이 빈곤을 이기지 못하여 내주평을 내왕하면서 농사나 경영할까 하던 중
  • 정유(丁酉 : 道紀 27, 1897)년에 그 마을 정남기(鄭湳綺) 집의 서숙에 가 보니 초립을 쓰신 상제님께서 글을 가르치고 계시거늘
  • 학동들이 부르기를 ‘강 서방’이라 하므로 형렬이 물으니 ‘정씨 집의 취객(娶客)이라.’ 하더라.
  • 서당의 학동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시고 마을 사람들의 사주(四柱)도 보아 주시니 동네에서는 신인(神人)으로 불리시더라.
  • 그 후 형렬이 사정이 있어 내주평에 가지 못하고 상제님께서도 천하유력을 떠나시어 서로 만나지 못하더니
  • 10 형렬은 가운이 더욱 기울어 하운동 제비창골에 있는 선산 재실(齋室)인 영사재(永思齋)로 이사하니라.

  • (증산도 道典 3:7)




  • 2절 7:2 내주평. 현재 김제시 봉남면 내광리(內光里) 내주 마을.
  • 2절 7:2∼4 이사 과정. 기존의 기록들과 김호연 성도와, 김형렬 성도의 손자 김현식(1918∼ ), 김충식(1923∼ ) 증언.
  • 10절 7:10 제비창골. 하운동에 있는 골짜기로 제비가 집을 짓고 새끼를 키우는 형국이다.
  • 10절 7:10 영사재. 안동 김씨 재실. 김형렬 성도는 안동 김씨 59세손이다. 안동 김씨가 미륵신앙의 본원지인 금산사 아래 구릿골에 들어와 터를 잡은 것은 김형렬 성도의 16대조인 윤강(允崗) 때(1495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