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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안을 아주 망치려 한다
  • 경석의 집안은 아버지 차치구(車致九)가 일찍이 동학을 믿어 갑오년에 동학군을 거느리고 혁명에 참가하였다가
  • 불의에 패망하여 죽음을 당한 이후로 가세가 기울어 형편이 빈한하더니
  • 상제님을 모실 무렵에는 끼니조차 잇기 어려워 경석의 제수가 한 동네에 잘사는 신(申)씨네에서 밥품을 파니라.
  • 경석의 아우 윤칠(輪七)은 근동(近洞)에서 주먹대장으로 유명한데 어려운 형편에 상제님까지 모시게 됨을 싫어하여
  • “동학한다고 집안이 망했는데 또 이상한 사람을 끌어들여 집안을 아주 망치려 한다.” 하고 불평을 하며 돌아다니거늘
  • 경석이 생각하되 자기가 청하여 모신 마당에 공궤(供饋)가 조악함도 민망하거니와 아우의 무례로 인하여 상제님을 뵙기가 더욱 송구스럽더라.

  • (증산도 道典 3:186)




  • 1절 186:1 차치구(車致九, 1851∼1894). 갑오년 동학혁명 당시 정읍에서 오천여 명을 거느리고 기포한 동학군의 지도자. 전봉준이 태인 전투를 끝으로 부하 십여 명을 데리고 순창 피노리에 가서 몸을 숨길 때 동행하였다.
  • 2절 186:2 죽음. 차치구는 피노리에서 정읍 입암면 국사봉으로 피신했으나 관군이 친구 부인을 통해 피신처를 알아내자 스스로 붙잡혀 당시 흥덕 군수 윤석진에 의해 죽음을 당하였다. 이후 차경석도 윤석진의 시기로 죽음에 직면했으나 어느 참의(參議)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다.<차경석 성도의 아들 차용남(1922∼2003) 증언>
  • 3절 186:3 제수. 윤경의 아내 주판례.
  • 3절 186:3 대흥리에는 세 마을이 있었다. 정읍 쪽 신평 마을에는 김씨들이 주로 살았고, 유단(柳壇)을 중심으로 한 진목 마을에는 차씨들이, 갈재쪽 100m 전방의 중흥 마을에는 신씨들이 살았다.
  • 3절 186:3 신씨네. 평산 신씨들은 차씨들보다 더 오래된 토박이이며 고수부님께서 이 마을 신씨와 혼인하셨다.
  • 4절 186:4 차윤칠(車輪七, 1884∼1920). 족보명 병국(炳國). 부인 김해 김씨 사이에 1남 용민(鏞民)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