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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명을 내리거늘
  • 영학이 아뢰기를 “일찍이 제가 최면암(崔勉庵)과 더불어 의병으로 행세하였더니
  • 이제 일본군들이 저를 의병의 거두로 여겨 날로 수사가 심하오니 제 한 목숨을 구하여 주십시오.” 하는지라
  •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영학아, 네가 나를 만나지 않았으면 네 성명(性命)을 보전키 어려웠으리라. 너는 지금부터 의병을 모의(謀議)하는 일에 인연을 끊도록 하여라.
  • 내가 이제 너를 잡으려는 일본군 부대장에게 칙서(勅書)를 내리리니 너는 스스로 일본군 부대를 찾아가라.” 하시거늘
  • 영학이 “지금의 형세로는 저들에게 잡히면 반드시 죽을 것이오니 스스로 찾아감이 불가합니다.” 하고 아뢰니라.
  • 이에 상제님께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명을 내리거늘 저들이 어찌 감히 그런 짓을 하겠느냐.” 하시니
  • 영학이 칙서를 청하매 상제님께서 칙서를 써서 보여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일본군 장교가 이 글을 보면 감히 너를 해하지 못하고 다시 화해하게 되리라.” 하시고
  • 칙서를 불사르며 말씀하시기를 “칙서가 그에게 먼저 도착하였으니 너는 염려 말고 다녀오라.
  • 일군이 지금 순창에 머물고 있으니 너는 먼저 군수를 만난 후에 일본군 대장과 통하라.” 하시니라.
  • 명을 어긴 신명과 인간의 죄를 다스리심
  • 10 이에 영학이 의구심을 품고 순창에 가서 명하신 대로 행하니
  • 11 일본군 장교가 영학이 있는 곳을 알고 크게 위세를 펴며 수백 명의 군사로 포위하고 영학을 붙잡아 신문한 뒤에 구류간에 가두거늘
  • 12 영학이 ‘갇히지 않을 것이라.’ 하신 상제님 말씀을 생각하고 용기를 내어 큰 소리로 저항하매 마침내 여러 장교들이 의병을 그만두겠다는 서약을 받고 석방하니라.
  • 13 영학이 그 길로 상제님을 뵈러 백암리로 와서 막 뜰 앞에 들어서는데 상제님께서 먼저 위로하시며 말씀하시기를
  • 14 “네가 이번 길에 매우 놀랐겠구나. 일본군 대장이 어떻게 감히 너를 가둔단 말이냐. 나의 명을 어긴 죄를 다스리리라.” 하시더니
  • 15 얼마 후 그 일본군 대장이 순창에서 갑자기 죽으니라.

  • (증산도 道典 3:239)




  • 1절 239:1 최면암(崔勉庵, 1833∼1906). 본명 익현(益鉉). 이항로의 문인으로 조선 말기의 거유(巨儒)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전라도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순창에서 의병을 이끌고 관군·일본군과 싸워 패전, 체포되어 대마도에서 생을 마쳤다.
  • 12절 239:12 서약. 무신년 6월 28일 전북관찰사 이두황과 헌병대 전주 수비대장 나까노(中野) 대위가 순창에 도착하여 7월 2일까지 머물면서 면장 이하 백성들을 훈시하고 정읍으로 이동하였다. 이 때 폭도로 지목 받은 사람들에게 면죄문서를 수여한 기록이 남아 있다.